나는 알고 있어.
어떤 삶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나야만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현실을,
인생은 언제나 타이밍이라 말하는 운명을,
나는 알고 있었어.
늦은 가을비가 내린다. 술기운에 붉어진 얼굴이 향하는 방향이 다르다. 맞고 가긴 빗줄기가 두꺼웠고, 마냥 기다리기에는 벌써 이십분 째였다. 곤란하네요. 하늘만 묵묵히 보던 최성우가 나지막하게 말하면 그제서야 신파랑이 고갤 든다. 그냥 갈까? 말꼬리가 내려간 탓에 질문 보다는 권유에 가까웠다. 최성우는 고민 없이 모자를 벗어 신파랑에게 씌워주더니 곧장 뛰쳐나갔다. 빨리 와요. 조심하고. 그러고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갔다.
그 장대비를 맞으며 겨우 도착한 곳이 웬 노포 술집이었다. 왜 여기냐. 어차피 한 잔 했겠다, 비도 좀 맞으면서 술도 깻겟다, 집에 가기엔 또 애매하고-이런 날 대리 부르면 잘 오겠지만서도- 택시를 태워 보내자니 집까지 뛰어가야 할 거리가 멀어서 그냥 택한거다. 사실 이건 전부 변명이고 그냥 한 잔 더 하려고 한 게 진심이다. 두 명이요, 하며 들어간 통 북적이는 내부는 바깥과 달리 후덥지근 했다. 약간 불쾌한 것 같기도... 여튼 자리에 앉아 적당히 세팅하고 그리고 뭐 먹을래요, 무슨 술 마실래요, 아 난 소맥은 별로... 그냥 소주 먹자 소주. 그러고 한바탕 지나가면 그제서야 긴장 풀린 양 늘어지게 앉는다. 괜찮아요? 안경 물기를 닦아내던 신파랑이 고갤 든다. 응. 괜찮아.
돌아오는 질문은 없었다. 그 다음 침묵을 깬 건 음식을 갖다 준 이모였다. 빈 말 없이 술을 까고 신파랑의 잔에 따라주고선 제 잔도 채운다. 일련의 행동이 버릇마냥 자연스럽다.